지난 17일 오후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이날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17일 김해신공항 추진 계획을 두고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자마자 여야 정치권은 각각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속도전에 나섰다. 서울에선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이 진행 중이고 지리산 산악열차, 목포~제주 간 해저터널 논의도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다시금 불붙는 토건 행정과 토건 정치의 현재를 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진단한다.
독일 본은 독일의 경제 부흥과 통일을 이끈 수도였다. 통독과 함께 베를린으로 행정부가 옮겨갔다. 베토벤 하우스가 있고, 니체가 있었던 본 대학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유엔 기후변화협약 본부가 라인강 근처에 있어서 전세계 기후변화협약 대응을 이끌고 있다. 쾰른 대성당으로 유명한 인근 쾰른에 공항이 있기는 한데, 주로 물류 공항으로 쓰이고, 국제 여객은 좀 떨어진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용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항이기는 한데, 여기도 지금은 야간 운행은 할 수 없다. 본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후 거대 독일 경제를 만들어낸 수도이면서도 자체 공항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토건이 강하지 않지만 산업이 강한 나라, 지금은 독일이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 독일과 마찬가지인 후기 산업국가로 자본주의를 시작한 일본은 ‘토건 국가’라는 별칭을 갖는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로 더욱더 공항과 민자도로에 집착하게 되었다. 통칭 ‘리조트법’을 통해서 골프장과 테마파크 건설로 경제위기를 돌파하려고 하였다.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이 되었고, 일본 경제의 위기가 깊어갔다. 2001년 고이즈미 개혁의 일환으로 ‘일본의 대곳간’인 대장성을 아예 해체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토건 경제를 총괄하던 기획재정부를 없애고 산업부와 총리실 등으로 기능을 분산시키는 변화를 준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행정적 기반은 이런 제도 변화가 아닐까 싶다. “시멘트 대신 사람에게”, 이런 구호들이 그 시절 등장하였다. 한국에도 “사람이 먼저다”, 이런 정책 기조가 잠시 있었다. 이 구호를 만든 사람이 국정감사에서 류호정 의원에게 “어이?”, 되치기를 당한 이후로 이제는 그저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후보 시절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쓰기는 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런 구호와는 아무 상관 없는 정책으로 갈팡질팡하다가 완전 망했다. 프랑스 사회당은 대선 결선투표에도 나가기 힘들 정도로 몰락했다. 구호가 중요한 것은 아닌 듯싶다.
코로나19와 함께 우리에게도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이 위기를 사람을 통해서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토건을 통해서 극복할 것인가, 알게 모르게 이게 당장의 현실이 되었다. 겉으로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경제는 상명하복의 일본 군국주의식 기업 문화와 ‘토건족’으로 대변되는 토건 경제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과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공채제도와 일본식 선후배 문화가 직장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쪽지 예산’으로 대변되는 지역 토건은 한국 정치의 속모습 아닌가? 일상의 방역으로 고통받는 경제 현장에 돈이 갈 것이냐, 지역발전 간판을 내건 토건으로 돈이 갈 것인가, 국민경제의 미래를 놓고 다시 한번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 ‘코로나 토건’의 시발점은 역시 서울이 먼저 끊었다. 촛불시위의 바로 그 현장을 엎어버리는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의 현재 예산은 800억원 정도로, 그렇게 큰 건 아니다. 그러나 작게는 도심 교통구조의 전면 전환 개편, 크게는 광화문 등 시내 일대의 지하도시와 연결된 메가사업이다. 근원으로 올라가면 오세훈 시장 시절의 ‘도로 다이어트’, 최근 논의로는 ‘걷기 좋은 도시’라는 또 다른 토건 사업과 연결되어 있다. 예전 시장은 가고, 다음 시장은 아직 오지 않은 현재 이 사업을 강행하는 건 서울시 토건 공무원들이다. 그게 지금 꼭 필요한가? 일단 첫 공사를 하고 나야 다음 공사를 이어나갈 수 있기에 행정 권한이 공백기인 지금이 적기라는 계산인 것 같다. 이번 토건에도 서울시가 모범생이다. 지리산 산악열차가 코로나 한가운데에 다시 전면으로 떠오른 것은 상징적이다. 지리산 보호를 위해서 관통 도로를 폐쇄하고, 반달곰 서식지 복원을 진행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관광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하는 논리가 다시 산악열차를 행정 한가운데로 밀어넣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보전과 복원을 얘기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코로나19를 명분으로 다시 관광 시설을 만들자고 하고, 이 기이한 공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서울과 지리산, 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전혀 경제성 없는 이미 오래전에 결론이 난 목포~제주 간 해저터널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호남고속철도’가 아니라 ‘서울~제주 케이티엑스(KTX)’로 이름도 고치자는 아주 파격적인 내용들이 나왔다. 목포에서 출발해서 해남, 완도, 보길도, 추자도를 거쳐서 제주도로 가자는 이 해저 고속철도를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시키려는 곳은 완도군 등 전남이다. 잠잠하던 해저철도가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것은 공교롭게도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난 총선의 여파다. 전남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역 토건으로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집권여당의 지역민원성 토건이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일이지만, 지역 토건에는 여야 그딴 건 없고, 진보/보수도 따로 없다. 이익파와 이상파가 맞부딪치는 현장에서 대개는 이익파가 이긴다. 이제 막 시작된 ‘서울~제주 케이티엑스’ 논의에서 특이 사항은 이번에는 한국 보수의 대표 격인 국민의힘이 반대 의견을 낸 지역의 목소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제주의 정체성을 섬으로 계속 유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는 제주도민 정체성과 연결되고, 제주도민 주권적 사항”이라고 말한 건 원희룡 제주지사다. 제주 2공항 문제로 한참 홍역을 앓고 있는 그의 고민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대책위원회 등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획재정부의 지리산 산악열차 한걸음모델 채택 규탄 및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국적 토건 흐름의 클라이맥스는 결국 공항이 장식한다. 2015년 객관적인 외부 전문기관으로 선정된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은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해서 쓰는 걸로 결론을 냈는데, 정치적 과정이 이 결과를 뒤집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이유야 찾기 나름이다. 지금 코로나 이후의 세계 항공수요에 대해서 아무도 예측을 하기 어렵다. 팬데믹 자체가 주기적으로 찾아오게 되면 국제적 분업구조의 지역화가 촉진될 것이지만, 그 양상을 예상하기 어려워서 항공 수요 회복 패턴을 시뮬레이션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덕도의 실제 매립 비용에 대한 경제성 평가도 별 중요한 요소가 안 된다. 김해공항이 24시간 이용이 어렵다는 것 하나로 모든 기술적·경제적 논의는 상황 종료!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홍준표의 빅플랜은 클라이맥스의 클라이맥스다. “부·울·경 840만은 가덕 신공항으로 가고, 호남 500만은 무안 신공항으로 가고, 티케이(TK)·충청 일부 800만은 대구 신공항으로 가고”, 결국 공항 세 개를 더 지어서 4대 공항 체계로 가자는 게 그가 제시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는 이걸 ‘4대 관문 공항 정책’이라고 부른다. 정치권이 꿈으로만 가지고 있는 지역 연방제를 이제 공항이 만들어주는가? 가히 ‘공항 연방제’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 넉넉잡아 30조원이면 지역분권과 균형발전 그리고 공항 중심 연방제까지 이룰 수 있는데, 못 할 것도 없다. 그럼 이미 운영 중인 지역의 공항들은? 항구 시대에는 항구가 산업의 배경이 된 건 맞다. 그러나 21세기, 항구를 공항으로 바꿔서 항구 패러다임으로 지역 경제를 짜는 건 이상하다. 지금 지식경제의 주요 도시들이 항구와 공항으로 생겨난 것일까? 사람과 문화가 먼저인 게 신산업이고, 공항 등 기반시설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게 요즘 추세다. 지금 지역 경제의 위기가 공항이 없어서 생겨난 것인가? 여전히 수도권 공장총량제는 유지되고 있다. 이쯤에서 한때 폐광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던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극적인 전환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르셰의 본사가 여기에 있다. 포스코 광고음악으로 유명해졌고, 이따금 아리랑 등 국악도 연주하는 재즈그룹 살타첼로가 바로 슈투트가르트 출신이다. 폐광과 이로 인한 제조업 공동화에서 그들이 찾은 것은 숲과 함께 생태적 전환 그리고 바람길이다. 그 덕에 주요 자동차산업의 본사가 찾아왔고, 문화 경제도 강점을 가지게 되었다. 생태와 문화가 경제를 만든 대표적 도시 모델이다. 공항? 큰 물류는 24시간 운항이 어려운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주로 사용한다. 본사와 연구시설, 문화 경제 중심으로 재편성된 도시가 공항 덕분에 생겨난 것인가? ‘걷기 좋은 도시’라는 구호로 시내를 죄 뜯어고치겠다고 큰 그림을 그리는 서울이나, 항공 물류로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홍준표나, 바닷속에서 미래 살길을 찾겠다는 전남이나 따져보면 저부가가치 시대의 경제 그림을 다시 그리는 중이다. ‘살기 좋은 도시’는 지식과 문화가 꽃피는 곳이고, 생태와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그리고 복지가 사회적 균형을 만드는 곳이다. 슈투트가르트로 간 대기업 직원 식구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얘기를 무척 인상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 토건, 아니 ‘공항’이 아닌 경제적 대안은 없는가? 새만금 때 여실히 보았듯이, 지역으로 가는 돈은 결국 최종적으로는 균형을 찾게 된다. ‘새만금 블랙홀’이라는 표현은 무주 등 각종 사업에서 예산 면에서 손해 본 전북 내륙지역에서 나온 얘기다. 토건 사업을 하나 받아오면 다른 예산이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토건 예산을 만약 그 지역에 특별예산으로 준다고 해보자. 그러면 주민들이 그 돈으로 해저터널이나 공항을 만들겠는가, 아니면 다른 데 유용하게 쓰겠는가? 코로나 국면, 급한 돈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토건을 뛰어넘는 정치, 한국에는 그런 고급 정치가 필요할 것 같다. 알박기 식으로 광화문광장부터 뜯는 서울시를 보면, 여전히 우리는 토건 행정과 토건 정치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외치지만, 우리의 행정 현실은 아직도 20세기식 토건 경제에 묶여 있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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